프리퀀시 하면 떠올라야 할 이미지는 스타벅스가 아니다. 이 영화가 떠올라야 한다.
평점 10.0점, 최악의 포스터.
최근에 찾아본 영화 중 탑건에 버금가는 평점을 가진 영화는 이 영화뿐이었다. 탑건의 평점은 9.60점, 이 영화의 평점은 9.33점. 도대체 무엇이 모든 사람들에게 레전드 영화라고 손꼽히는 탑건에 버금가는 평점을 만들어낸 걸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라난 내게 프리퀀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스타벅스였다. 한 때 전자공학을 전공하며 프리퀀시란 단어를 지겹도록 듣긴 했지만 그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였다. 진작에 학부 때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내게 전자공학적인 사고가 정상적으로 작동할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정신이 들었다. '아, 스타벅스 프리퀀시가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의 프리퀀시구나.'
영화 포스터에서 처음 프리퀀시란 단어를 봤을 때 들었던 이미지는 스타벅스도, 전자공학도 아닌 물음표였다. 보통은 영화 포스터를 보고 흥미가 생기거나 영화 제목을 보고 흥미가 생기면 그 영화를 보곤 한다. 이 영화의 포스터와 제목을 보고 있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영화인가 보나 마나 망작일 테지라고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어떤 이는 평점 10.0점과 함께 한 줄의 평을 남겼다.
"최악의 포스터."
드라마 '시그널'의 원조격인 영화.
그럼 무엇이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어 냈을까. 크게 2가지 이유로 나눠 볼 수 있겠다.
첫 번째,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타임슬립 영화.
나는 타임슬립 영화치고 재미없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진 못할지언정 이해가 안 되면서도 재밌는 영화는 타임슬립 영화 밖에 없다. 이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라디오를 매개로 타임슬립이 진행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존 설리반은 연쇄살인마를 쫓는 경찰이다. 그는 과거에 소방대원으로 일하던 아버지 프랭크 설리반을 화재 사고로 잃고 그 아픔을 여전히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창고에서 낡은 라디오를 발견한 그는 옛날에 아버지와 함께 놀던 것처럼 라디오를 맞춰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라디오는 몇 번의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한 남성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라디오 속 남성의 목소리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였던 프랭크 설리반이었고, 존 설리반은 라디오를 통해 현재와 과거가 이어진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과거에 살고 있는 아버지 프랭크 설리반의 도움을 받아 잘못된 과거를 조금씩 고쳐나가기 시작한다. 화재 사고를 미리 알려주며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고, 연쇄살인마에게 목숨을 잃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과거의 연쇄살인마를 쫓기 시작한다. 그렇게 현재와 과거가 연결됐다.
두 번째, 드라마 '시그널'의 익숙함.
명작이라 불리는 드라마 중에 항상 손꼽히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시그널'이다. 무전기를 매개로 현재와 과거가 이어진다. 이 영화는 그 드라마의 원조격인 영화다. 무전기가 라디오로, 경찰이 소방대원으로 바뀌었지만 범인을 찾고, 과거의 실수를 바로 잡으며 더 나은 현재를 만들고자 하는 구성이 같다. 첫 번째 이유로 시그널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다면 두 번째 이유로 그 재미를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의 재미로 느낄 수 있다.
잡설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다. 과거의 실수를 바로 잡더라도 현재가 마냥 행복하게 바뀌진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타임슬립 영화에서 과거의 바뀌었을 때의 부작용을 얘기하며 현재를 더욱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과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지금의 현재를 올바르게 살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사실 이 영화처럼 어쩌다 우연히 과거와 연결이 닿아 실수를 바로 잡고 현재를 행복하게 바꾼다는 건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조언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게 적절할 수도 있다. 글을 쓰며 잠깐이나마 고민에 빠졌지만 역시나 쉽게 해결될 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일단 오늘은 이 영화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하며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누워 타임슬립은 아니지만 딥슬립이라도 해보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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