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재와 정우성, 두 사람은 서로를 사냥하는 것도 그 다른 무언가를 사냥하는 것도 아닌 내 마음을 사냥하고 떠났다.
이정재, 정우성이라 쓰고 멋짐이라 읽는다.
개봉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한데 받았던 영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정재와 정우성을 한 장면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컸다. ‘태양은 없다’에서 젊은 청춘이었던 두 사람은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영화 씬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았고 그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는 사실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떤 영화든 내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비주얼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영화였다.
이정재와 정우성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안기부 소속으로 국내/ 해외 파트장으로 나누어 물리적으로 견제 대상으로 만든 것과 동시에 영화의 시작부터 상대방을 견제하고 탓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관계임을 관객들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헌트는 서로를 향한 사냥이 아니었다.
둘의 갈등이 활활 타오르게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인물은 ‘동림’이다. 동림은 특정되지 않은 인물로 각하를 시해하기 위해 안기부 내 내부 정보를 북한 측에 전달하는 내부 첩자이다. 이정재와 정우성은 각자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동림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서로의 뒤를 밟고 증거를 쫓으며 서로를 사냥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사건이 흐를수록 동림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지며 서로가 사냥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 하나가 동림으로 몰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몰리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정재와 정우성 둘 다 ‘동림’이기 때문이었다. 이정재는 남한의 정보를 북측에 전달하며 통일을 도모하는 동림이었고 정우성은 잘못된 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각하를 시해하려는 정보를 흘리는 동림이었다. 둘이 사냥했던 건 동림이 아니라 잘못 세워진 정부, 이념을 향한 사냥이었고 둘은 적대 관계가 아닌 어쩌면 동업자였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끝에 둘의 운명도 같았다. 결국 각하를 시해하는 데에 실패하고, 평화적인 통일도 불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둘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살해당하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같은 목적을 가진 둘이었지만 서로를 몰랐고, 그렇게 달랐던 둘이 서로를 치고 박다가 결국 같은 운명을 겪게 되는, 영화 속이 아닌 실제에서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둘의 우정이 영화 속에서도 마저 이어지걸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잡설
한국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별 생각이 없다고 보는 편이 더욱 맞을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비슷한 스토리와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신선함을 전달해주기에 무척이나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몇 개의 영화는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주제가 재미있거나 상상하지 못한 조합의 배우들이 나온다거나 혹은 이정재와 정우성이 같은 영화에 나온다거나. 이 영화는 그런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준 영화다. 이정재와 정우성뿐만이 아니라, 영화 속에는 주지훈, 이성민, 황정민, 김남길 그리고 신세계 중구형, 박성웅까지. 영화 내 숨은 배우 찾기에 가까웠다. 질보단 양이라는 얘기를 하지만 이 영화는 질 좋은 배우들을 양으로 때려 넣었다. 오래간만에 한국 영화에서 괜찮은 액션 영화를 본 느낌이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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