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다툼이다. 나 자신과의 다툼이거나 혹은 세상과의 다툼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그렇게 단단해진 몸으로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감옥에 간 해리포터, 이제는 시민 혁명가의 모습으로.
이제 더 이상 앳된 모습의 해리포터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를 또는 그 소년을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다 같이 영화 감상을 할 때였다. (아 물론 내가 초등학생 때였다.) 그때 그 영화가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이였다.
영화 속에 나오던 호그와트에서 마법을 배우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 어엿한 시민 혁명가 됐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실에서 마법사의 돌을 보던 아이는 장래희망이 돌이 됐다. 성인이 되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살아만 갔으면 하는 돌 같은 삶을 추구하며 연명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해리포터 제작진이 다니엘 래드클리프를 아직도 놓아주지 못하는 이유가 충분한 영화다. 어린 시절 막대기 하나 들고 각종 연기를 펼치면서 숙련도를 쌓았던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이제 진짜 연기를 할 때가 되니 그 내공을 폭발시켰다.
찻잔 속의 태풍 같은 영화, 잔잔하지만 그 안은 힘이 있다.
영화는 극 중 이름인 팀이 시민 혁명가로서 활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고, 동료 죄수들과 탈옥을 준비하면서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놀라웠던 한 가지는 주인공이 위기에 닥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무릇 탈옥이라 하면 교도관들에게 들켜 구타를 당하기도 하고 독방에 들어가 죄송무새 흉내라도 내야 하는데 말이다.
일사천리라는 말까지는 어렵겠지만, 모든 과정이 상당히 스무스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언제쯤 위기를 맞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보게 된다. 물론 영화 속 당사자는 교도관의 발걸음만 들려도 마음이 쫄리겠지만 그동안 다른 영화에서 봐왔던 위기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무겁고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정도가 맞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짜인 흐름은 지나친 시련과 자극적인 장면이 없더라도 충분히 집중하게 만들었다. 나무를 조각해서 키를 복사하거나 매일 밤 복사한 키로 여러 개의 철창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테스트하는 장면은 무난하지만 그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대단한 혁명가적 내용은 없지만 꽤나 볼 만한 영화다.
잡설
'클리셰'라고 한다. 이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을 가리키는 문학용어'다. 흔히들 감옥에서 탈출하는 영화라고 하면 그에 합당한 클리셰가 있다. 이를테면 독방에 갇혀서 피와 살이 말리는 경험을 한다거나 감옥 안에 세력 다툼으로 죄수 간의 싸움이 벌어진다거나 혹은 교도소에 왕처럼 군림하는 교도소장의 압력에 짓밟히는 나약한 죄수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모든 시련을 겪은 후에 교도소를 탈출할 때 비로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클리셰는 진부하지만 잘 먹힌다. 그래서 어김없이 아침 드라마에는 김치 싸대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다르다. 탈출하는 일련의 과정이 전혀 진부하지 않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새롭다. 이 영화는 그 중간의 줄타기를 마치 줄타기 무형문화재처럼 훌륭하게 해냈다. 혹자는 고통도 사건도 갈등도 폭력도 없는 이 영화가 지루하다 할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차치하고도 재밌는 영화가 있을 수 있다는 그 본보기를 보여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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