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추천할 땐 항상 신중을 기해야 한다. 어설프게 추천했다간 관계가 멀어질 수 있으니.
감히 내게 이런 영화를 추천하다니.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친한 친구의 추천 때문이었다. 내게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이 있었고 나는 레이첼 맥아담스가 주연으로 맡은 ‘게임 나이트’를 추천해줬다. 나름 내가 생각했을 땐 B+급의 영화는 된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인 레이첼 맥아담스까지 곁들여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 그 친구에게 들은 말은 “재미없던데?”였다. 나도 지기 싫어서 그럼 네가 한번 추천해봐라고 맞받아쳤고, 그 결과가 바로 '아이 오브 더 데드: 도둑들'이었다.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영화를 추천해준 그 녀석이 내게 앙심을 품고 이런 영화를 추천해줬구나였다.
영화는 한스 바그너의 금고에 엮인 전설을 좋아하던 한 은행원이 팀을 꾸려 세계 곳곳에 있는 금고를 열며 자신들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덤으로 도둑질까지 하는 도둑들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 제바스타인은 유튜브에 한스 바그너의 금고에 엮인 전설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올렸고, 며칠 뒤 그 영상에 달린 답글은 “어디 한번 시험해볼래?”였다.
의문의 장소에 초대받은 제바스타인은 그 장소로 향했고 그곳에서는 6명의 참가자가 잠겨져 있는 금고를 여는 토너먼트를 진행하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던 제바스타인은 평소 금고 덕후로서의 기질을 발휘해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에게 팀을 꾸리자는 제안이 오게 된다.
금고가 아닌 내 멘털을 탈탈 털어버린 도둑들.
그때부터 5명으로 이루어진 팀은 한스 바그너가 남긴 절대 풀지 못하는 금고 3개를 털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여차저차 은행에 숨겨져 있던 2개의 금고를 푼 시점에, 그들을 쫓는 인터폴이 세 번째 금고의 위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둑들'은 이런 전개까지 미리 예상을 했고 은행에 들어가 금고를 여는 대신에 아예 금고를 훔치기로 계획한다. 마지막 세 번째 금고를 훔친 이들은 제바스타인이 금고에 귀만 대면 안에 구조가 보이는 굉장히 영화스러운 재능 덕분에 마지막 금고를 열게 된다.
마지막 금고를 끝으로 ‘도둑들’은 헤어지게 되고, 제바스타인은 작은 도시에서 열쇠공의 삶을 살며 숨어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를 찾아온 또 다른 ‘도둑들’은 ‘니벨룽겐의 반지’라 불리는 한스 바그너가 남긴 금고, 최종 보스를 털자고 제안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비슷한 영화 중에 ‘웨이 다운’이라는 영화가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풀지 못하는 금고를 천재 한 명을 팀에 영입함으로써 풀어내는 유사한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영화는 그 영화에 조금도 미치지 못한다. 독일 특유의 유쾌하지 않은데 자기들만 유쾌한 코드들을 집어넣어, “쟤들 뭐하지?”라는 생각을 영화 내내 들게 한다. 이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준다는 건 ‘전쟁 선포’에 가깝다. 혹여 관계가 멀어지고 싶지만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하길 바란다.
잡설
선물을 고르거나 가전을 사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맛집을 찾거나 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추천'이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실패 없는 경험을 하고 싶다. 그럴 땐 이미 누군가가 경험했던 것 중에 최고를 추천받아 그대로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이 영화를 추천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추천은 내 취향을 강매하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고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을 꽤나 유쾌하다. 그러나 그들만 유쾌하다. 맞지 않은 코드에 영화를 보는 내내 지독한 건성이라 조금만 입을 벌려도 입술 주위가 하얗게 변하는 나조차도 단 한 번도 웃지 않아 촉촉한 입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추천서'를 쓴다고 한다. 추천서를 써주는 사람은 자신의 명예와 신뢰를 걸고 누군가에게 추천한다. 그만큼 추천이란 건 취향을 넘어서는 만족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미 이 영화에 실망해버린 나는, 그 친구에게 또 다른 영화를 투척.. 아니 추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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