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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연애 빠진 로맨스(Nothing Serious, 2021), 미묘한 술자리, 전종서의 눈빛은 종교에 가깝다

by 기묭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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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빠진로맨스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술자리에서 그녀의 눈빛은 종교에 가깝다. 교회나 성당에서만 신앙심을 느끼는 건 아니다. 그녀와의 술자리에서도 느낄 수 있다.


손석구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전종서만 보인다.

근래에 손석구만큼 뜨거운 배우가 있을까 싶다. '범죄도시 2'와 '나의 해방 일지'를 기점으로 연기력과 흥행력까지 증명한 그는 현시점에 가장 독보적인 배우다. 무언가 따뜻하지만 양아치스러운 눈빛이 있으면서도 포근하기도 하고 시니컬하기도 한...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그만의 분위기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다. 나 또한 같은 이유로 좋아하니까. 그런 그가 이 영화에서는 유독 보이지 않는다. 그의 옆에는 전종서가 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그녀의 눈빛은 종교에 가깝다. 이미 몇 잔의 술에 1차 방어벽이 무너진 상황에서 그녀의 눈빛은 너무나도 쉽게 본진에 입성했다. 한 순간에 함락되어 버린 내 이성 체계는 더 이상 무신론자임을 주장하지 못한 채, 오로지 그녀를 향한 신앙심만 가득 채워질 뿐이었다. 분명 평상시에는 냉장고에서 배달시킨 지 이틀은 족히 지났을 양념치킨을 꺼내 에어 프라이어기에 180도 12분 돌리고 낮부터 맥주 한 캔과 무한도전 재방송을 볼 것 같은 삶이 상상되는 눈빛을 지니고 있는데, 어찌 된 건지 술만 들어가면 세상 모든 남자들을 홀려버리겠다는 일념 하나만 머릿속에 가득 찬 사람으로 변한다.

전종서는 확실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다. 처음 그녀를 봤던 '버닝'에서의 눈빛도 마찬가지다. 유아인을 유혹하는 그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나는 아마 그때 무신론자에서 한 발자국 멀어지진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한 발자국이 부족했던 것인지 이 영화에서 마지막 눈빛 한 방을 날린 것에 맞아 넉다운했다.


전종서
출처 : 유투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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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는 종교를 버리지 못한다.

영화는 성에 관한 칼럼을 쓰게 된 손석구가 직접 취재에 나서기 위해 '만남 어플'을 사용하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전종서를 만나게 되고 그는 그녀와의 시간들을 그녀 몰래 잡지에 기고하게 된다. 물론 그녀 모르게.
"애매하다. 애매해."부터 시작된 그의 칼럼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를 더해갔다. 그녀를 속이고 그녀와의 시간을 기고하는 데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주위의 반응은 뜨겁고, 편집장은 더 새로운 소재를 가져오길 원했다. 사실대로 그녀에게 말할 타이밍을 기다리지만, 결국 그녀가 사실을 먼저 알게 되고 자신이 단지 칼럼의 소재였을 뿐이라는 생각에 배신감이 든 전종서는 손석구와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종교라 하지 않았는가. 무신론자가 종교를 가지는 건 어렵지만 이미 종교를 가진 이가 종교를 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전종서를 잊지 못하는 손석구는 해가 지나서도 그녀가 머물렀던 곳을 다니며 우연히라도 그녀를 만나기를 희망하고, 끝내 둘은 서로 만나게 된다. 매번 기도를 하며 나의 물음에 오지 않는 답을 기다렸던 공허한 시간이 그녀의 답으로 보상받았달까. 전종서의 독실한 신자가 되기로 한 손석구의 앞 날을 기대해본다.


잡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찬송가만 부르지 않았을 뿐이지 거의 그녀를 위한 사모가 담긴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냥 잠깐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고 이제 현실로 복귀해야겠다.
안타까운 부분은 '버닝'과 '연애 빠진 로맨스'를 제외하곤 그녀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만한 필모그래피가 없다는 점이다. '종이의 집'에서 도쿄역을 맡아 나름의 열연을 하긴 했지만 혹평이 더욱 많을 뿐이다. 나조차도 고개를 저으며 이건 현실이 아니야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그녀의 간이 고생은 조금 하겠지만, 차라리 술이나 실컷 마시는 영화를 찍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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