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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폴: 600미터(Fall, 2022), 높이라는 원초적인 두려움

by 기묭 202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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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600미터 공식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려움 그 자체 외에는. 다만, 그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상 600미터 위, 높이라는 두려움

영화 속 남녀 세 명의 친구는 아무것도 없는 절벽 위를 오르는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였다. 어김없이 절벽 위를 오르며 살아있음을 느끼려는 찰나에 그 들은 남자 친구 댄을 사고로 잃게 된다.
그렇게 둘이 된 그녀들은 한 동안 슬픔에 빠져 인생을 하찮게 허비하고 있었다. 둘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을 다시 한번 준비하게 되고, 그 선택은 지상 600미터 위, 오래되어 방치된 녹슨 TV 타워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지상 600미터 위의 정상, 그 아래 지상 1미터에 첫 발을 내딛는 시간은 20분 13초였다. 영화 시작 20분 만에 그녀들은 타워를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33분 06초가 지나는 시점까지 내 손의 땀은 식을 줄 몰랐다. '높이'라는 원초적인 공포를 가져온 영화는 손이 마를 시간을 주지 않았다.

단지 타워를 오르는 모습만 보여줬더라면 아마 이렇게까지 공포를 느끼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감독은 공포를 환기시키는 장치들을 곳곳에 설치해두었다.
바람에 사다리가 흔들리는 장면이나 타워를 지탱하는 나사가 헐거워지는 장면, 조금만 발이 닿아도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이런 공감각적인 장면들을 머릿속에 주입식 교육으로 집어넣다 보니 어느새 공포가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공포를 느끼며 영화를 시청한 나는 그녀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했다.


주인공이 600미터 타워를 올라가는 장면
출처 : 유투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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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을 느끼는 올바른 방법

"인생은 찰나다. 인생은 짧고, 너무 짧다. 그래서 당신은 매 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아주 좋은 메시지이다.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임에는 분명한데 지상 600미터 위로 애들을 올려 보내니 심금이 아니고 그냥 펑펑 울려버렸다. 화려했던 마스카라는 남김없이 흘러 지워져 버렸고, 화장 수정을 위해 챙겨 온 아이라이너는 "살려주세요. 저희 600미터 위에 갇혀있어요. 제발 911에 신고해주세요."란 메시지를 적는 도구일 뿐이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이 꼭 이렇게 극단적이어야 할까. 작은 화분에 물을 주는 것만으로는 내가 이 존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다. 우리 조금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정 어려우면 자기 볼이라도 꼬집어보자.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상 600미터 위 타워를 오르는 방법 말고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올바른 방법이 분명 존재할 테니, 가만히 자리에 앉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고민해보자.


잡설

나는 평소에 높이라는 공포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높은 빌딩에서 아래를 쳐다보거나 출렁다리 위에서 팔짝팔짝 뛰기도 하며,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의 높이는 그저 재밌는 광경일 뿐이었다. 거기까지였다. 나는 지상 10미터도 되지 않는 거실 바닥에서 손에 땀을 쥐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거실 바닥 50cm 위 소파에도 편히 앉지 못했다. 무서워서..

영화를 본 후에 휴대폰을 바꿔야 하나 생각했다. 최근에 공개한 아이폰 14는 위급할 시에 위성 통신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지원한다고 한다. 미국이나 캐나다같이 땅이 드넓고 통신이 원활하지 않은 지역이 많은 경우엔 사막 위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희망을 주는 기능이 아닐까 싶다. 600미터 타워 위, 위성 통신 한 번이면 진작 지상 0미터로 내려와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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