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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와이프라이크(WifeLike, 2022), 므흣한 제목, 이제 트렌드는 반려인이다.

by 기묭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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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라이크 포스터
출처 : 다음영화

'나'를 잃어버리긴 불가능에 가깝다. 어떠한 짓을 하던지 결국 우리는 '나'를 되찾고 말 테니까.


일단 영화 제목은 므흣한데..

 어쩌면 먼 미래에 우리가 직접 겪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력은 현재에는 없는 무언가를 가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에는 굉장히 선명해진다. 마치 금요일 저녁, 월요일에 출근해서 이 영화의 후기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을 선명하게 상상했던 것처럼 말이다. '와이프라이크'라는 영화 제목으로는 미처 다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의 끈을 쉽사리 놓을 수 없는 영화다. 영화 제목으로 느끼기엔 오락성이 짙으며 흔히 말하는 므흣한 장면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 영화의 스토리를 넘어서는 즐거움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와이프라이크' 이미 자극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영화는 1차원적인 쾌락의 즐거움을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의 즐거움을 주었다. 물론 영화의 개인적인 평점은 10점 만점에 6.6점이라는 매몰찬 점수를 매겼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는 점에서 소수점을 반올림하여 7.0점까지는 어떻게 매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와이프라이크
출처 : 유튜브


와이프라이크6
출처 : 유튜브


반려견.. 어? 반려인이네?

영화는 먼 미래에 반려인, 그러니까 와이프를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꽤나 자극적일 수도 있는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이제 남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과 떨어지지 않고 평생을 같이 살 수 있다. 심지어 '주인'으로서 통제까지 하면서 말이다. 남자 주인공 윌리엄은 그렇게 메러디스를 구매하게 된다. 메러디스는 걷는 법부터 차근차근 기억해내며 조금씩 실제로 살아있었을 때의 자신을 되찾아간다. 메러디스는 구매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었기 때문에 밤이 되면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베드에 누워 충전을 해야 했고, 그 시간은 그녀가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시간이었다. 꿈을 꾸게 된 그녀는 꿈속에서 가면을 쓴 한 남성을 만나게 된다. 꿈을 꿀 때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없던 가면을 쓴 낯선 이가 계속 등장했고 그녀는 그 의문의 남성에게 호기심이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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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라이크2
출처 : 유튜브


와이프라이크5
출처 : 유튜브


 그녀는 꿈속에서 가면을 쓴 의문의 남성을 계속 만난다는 사실을 남편인 윌리엄에게 말하고 그와 함께 진실을 쫓게 된다. 정확하게는 메러디스는 진실을 쫓는 것이었지만 윌리엄은 그 의문의 남성을 찾아 죽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가면을 쓴 남성은 과거 메러디스의 애인인 킨이었고 윌리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다시 한번 꿈속에서 살해하고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기 위해 추적한다. 윌리엄은 사실 킨 그리고 메러디스마저 살해한 후에 반려인으로서 메러디스를 구매하고 마치 자신의 와이프였던 양 행동하고 있었다. 이제 윌리엄은 그녀를 이용해 꿈속으로 같이 들어가 그녀의 옛 애인이었던 킨을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한다.


와이프라이크3
출처 : 유튜브


꿈속에 같이 들어간 윌리엄은 킨을 찾았고 살해하려고 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윌리엄은 대신 메러디스의 꿈속 기억이 오류라고 치부해버리고 그녀의 기억을 리셋하고 다시 걸음마부터 다시 반려인으로 들이려고 한다. 그렇게 '와이프라이크'사의 반품된 메러디스는 기억을 삭제하기 전 그 공간에 있던 다른 반려인에게 기억을 유지하는 방법을 듣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기억을 몰래 유지한 채 다시 윌리엄의 품에 들어간다. 기억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숨긴 채 연기를 하던 메러디스는 윌리엄을 제지하려고 온 동료를 윌리엄이 살해하는 모습을 보고 킨을 죽였던 것처럼 그를 죽인 것이냐고 되묻는다. 이제 프로그래밍된 메러디스가 아닌 옛날의 기억을 되찾은 메러디스는 킨의 복수를 위해 윌리엄이 자신을 죽였던 방식 그대로 윌리엄 살해한다. 자유를 되찾은 그녀는 '와이프라이크'사를 무너뜨리기 위한 조직에 합류해 더 큰 싸움을 준비하며 영화는 끝난다.


와이프라이크4
출처 : 유튜브


잡설

'나'라는 본성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하다. 기억을 지우고, 기억을 지우고, 기억을 여러 번 지워도 결국 '나'라는 무언가에 도달하게 된다. 아무리 기술의 발전으로 '나'를 지우고 새로운 누군가로 프로그래밍할지라도, 그 프로그래밍이 너무나도 정교하여 반려인과 비슷할지라도 그건 더 이상 예전의 '나'가 아니다. 어떠한 면에서는 불완전할지라도 자아를 가지고 내가 누군지 정의 내릴 수 있는 지금의 내가 가장 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나'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혹시나 먼 미래에 메러디스처럼 다시 프로그래밍될 때 0과 1에 지배당하지 않고 깨어날 수 있도록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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