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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브레이크업 - 이별후애(The Break-Up, 2007), 설거지 좀 하자, 제발

by 기묭 2022.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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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업 이별후애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뜨겁진 않지만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차갑게 식었다고 오해하지 말자.


설거지 그 까짓게 뭐라고 이 사단을 만들까

어쩌면 그 어떤 영화보다 가장 현실적인 이별을 보여주는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이별 후에 전혀 설득력 없는 논리와 감정선으로 억지로 결합시켜서 영화를 끝맺음하는 것보단 제목처럼 이별후애(愛), 그러니까, 한 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둘이 이별 후에 서로를 응원하는 애정을 표현하는 편이 논리가 충분치 않으면 철옹성에 가까운 ESTJ인 나에게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렇기에 어쭙잖은 해피엔딩보단 그 끝이 더욱 간결했다.

빈스 본과 제니퍼 애니스톤, 둘의 이별후애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야구장에서 살아생전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서로를 보게 되고, 빈스 본은 제니퍼 애니스톤에게 한눈에 끌려 그녀에게 머스터드 잔뜩 묻는 핫도그로 작업을 건다. 빈스 본은 마치 영화 '아수라'에서나 나올 법한 경남건설 작업 반장을 능가하는 작업 실력으로 그녀를 성공적으로 쟁취한다. 그렇게 둘은 한 지붕에서 먹고 자는 결혼한 사이가 된다. 빈스 본의 이런 훌륭한 작업 실력이 결혼 후에도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그간 갈고닦은 현장 작업 노하우가 이제는 퇴물이 된 건지 제니퍼 애니스톤을 배려하는 그 어떤 행동도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이 이별하게 된 아슬아슬한 뇌관은 애처롭게도 설거지 때문이었다. 나 또한 오랜 기간 연애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설거지가 얼마나 귀찮은 행위이며 인간의 쉬고 싶은 욕구에 반하는 행위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연애는 기브 앤 테이크다. 나를 위해 수고하는 상대방을 위해 나 또한 마땅히 그에 버금가는 일을 해야만 한다. 빈스 본은 타고난 말발로 작업만 잘 걸었지, 이러한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브레이크업 장면
출처 : 유튜브


강형욱도 한 수 접을 기상천외한 개과천선 프로젝트

제니퍼 애니스톤도 이제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이 참에 손에 물 한 방울도 묻히지 않는 빈스 본을 개과천선시키기 위해 강경한 스탠스를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스탠스는 빈스 본도 마찬가지였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함께 하던 볼링 모임에서 빈스 본을 투표로 제명시키거나 새로운 남자와 데이트를 나가기도 한다. 반대로 빈스 본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거실에 식탁을 빼고 당구대를 몰래 놓거나 거실에서 낯선 여자들을 초대해 돈 대신 입고 있는 옷을 걸고 포커를 치는 일명 스트립 포커를 치며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둘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순수한 바람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 길을 너무 멀리 걸어왔고 의도하지 않은 잘못된 표현이 그들을 정말로 서로에 대한 미련이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둘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우연히 길거리에서 다시 만난 둘은 어색한 포옹 이후에 서로를 응원하는 그냥 보통 이웃사촌보단 조금 더 친한 이웃사촌 정도의 관계가 되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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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애니스톤
출처 : 유튜브


잡설

둘이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안타까움의 연속이다. 영화 속 둘의 모습은 우리 주위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현실감 있다. 연애 초반 모든 것을 다 줄 것처럼 불 켜진 양초처럼 자신을 뜨겁게 태우던 사람들은, 너를 위해 태우던 그 뜨거움을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듯이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차갑게 식은 것은 너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초는 언제까지고 무한히 뜨겁게 탈 수는 없다. 어느 순간엔 불이 꺼지는 게 당연하다. 다만 양초를 세우던 받침대는 여전히 뜨겁고 그 열기를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 또한 사랑이다. 처음처럼 뜨겁진 않지만 여전히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그 또한 말이다. 대단히 뜨거운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그마한 온기도 사랑이라고 느낄 때, 빈스 본과 제니퍼 애니스톤처럼 단지 뜨겁지 않다고 서로를 배척하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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