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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열여섯의 봄(The Crossing, 2019), 열여섯 갈래의 길 앞에 선 열여섯 소녀

by 기묭 202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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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의봄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열여섯의 봄은 이미 다 자란 성인의 봄과는 다르다. 열여섯 소녀의 앞에 열여섯 갈래의 길이 펼쳐진 것처럼.


열여섯 갈래의 길 앞에 선 열여섯 소녀.

연휴를 앞두고 이미 일한다는 개념은 점심에 나온 버섯전골과 함께 밥 말아먹은 지 오래였다. 회사에서 더 이상은 집중하지 못하고 내게 부여된 하루 8시간 근무라는 족쇄를 그대로 끊어버리고 “금일 업무가 마감돼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란 말과 함께 회사를 도망쳐 나왔다.
에어팟을 끼고 노이즈 캔슬링이 작동하려는 시점에 뒤에서 어렴풋이 들렸다. "응?, 업무가 마감됐어?"

연태 고량주를 마실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전철을 타고 퇴근하던 중에 내 옆엔 열여섯 즈음으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생각났다. ‘열여섯의 봄‘이.
진짜 열여섯의 학생을 옆에 두고 ‘열여섯’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미 그 나이를 한참이나 지난 내가, 웹툰을 집중해서 보고 있던 열여섯의 학생 대신에 그 의미를 생각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열여섯의 봄’의 영어 제목은 ‘The Crossing'이다. 한글 제목이나 무척이나 상반되는 단어였다. ’The Crossing'은 길이 교차되는 건널목을 의미한다. 여러 길이 교차되는 이 건널목이 의미하는 건 아마도 영화 속 열여섯의 학생 류즈페이가 경험했던 방황을 의미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던 그녀에겐 열여섯 갈래의 교차로가 눈앞에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류즈페이가 교차로에 봉착하는 순간에 마치 영화도 함께 인양 화면이 정지된다. 우리는 화면이 정지된 그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 그녀에게 지금과는 다른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질 거라는 걸 알게 된다. 아이폰을 밀수하다 세관에 걸려 도망치던 남자가 길을 걸어가던 류즈페이에게 밀수품을 몰래 건네는 장면이 그러하다.


류즈페이
출처 : 유투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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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어항에서 바닷속으로.

류즈페이는 우연한 계기로 아이폰을 밀수하는 일에 가담하게 된다. 시작은 순수한 마음이었다. 친구와 일본 여행을 가기 위한 경비 마련이 그 목적이었으니까. 그녀는 하오라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하오는 류즈페이의 친구와 연인 관계였지만 같이 일을 하며 오랜 시간 가까이 붙어있던 둘은 어느새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러다 하오는 류즈페이와 함께 조직을 위한 밀수가 아니라 조직으로부터 독립해서 밀수하기를 계획한다. 그러나 계획은 계획일 뿐, 조직에게 걸려 된통 얻어맞던 하오와 류즈페이는 평소에는 반갑지도 않을 경찰의 습격으로 구사일생한다. 이 일을 계기로 열여섯 소녀는 평범한 열여섯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화 속에는 상어가 등장한다. 처음 류즈페이가 상어를 본 건 비좁은 어항 속 상어다.

“너도 이 좁은 어항에서 나와 자유롭게 헤엄쳐야 할 텐데.”

어쩌면 어항은 스페이 자신이고 어항 속 상어는 류즈페이 마음속 방황이나 쾌락이 아닐까 생각했다. 밀수하면서 만나며 자신이 마음을 주었던 하오의 몸에는 상어 모양 타투가 있었다. 그래서 류즈페이는 본능적으로 하오에게 끌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끝이 좋진 못했다.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 류즈페이는 처음 봤던 어항 속 상어를 드넓은 바다에 방생시켜준다. 자신의 방황과 쾌락을 놓아준 것이다. 상어를 방생하는 모습은 홀가분보단 공허였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오른 산 위에서 열여섯 소녀의 소원이었던 홍콩에 내리는 눈을 보며 흐뭇해하는 류즈페이의 모습은 공허를 빈틈없이 채우는 희망이었다.


잡설

짜장면의 오이는 빼고 먹는 편식하는 습관을 가진 나는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하다. 장르에 대한 편식은 크게 없지만 어느 나라의 영화인지에 대한 편식은 있는 편이다. 중국이나 대만영화는 로맨스 장르를 제외하고는 보지 않는 편이다. 아직 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로맨스를 제외한 장르는 미국, 캐나다 등에서 워낙 훌륭한 영화가 많이 나오기에 굳이 중국이나 대만 영화를 고르진 않는다. 다만,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로맨스에 있어서는 한 번씩 그 감성을 느끼기 위해 선택한다.
'열여섯의 봄'은 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전혀 다른 영화였다. 영화를 다 본 후 찾아본 각종 국제영화제 수상이라는 단어가 이 영화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다. 열여섯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 이 영화가 주는 색다름이 있었다. 영화 속 열여섯 소녀는 로맨스 영화만 편식하던 내게 중국, 대만 영화에도 다른 맛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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