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파, 브로콜리, 소고기, 굴, 빵이 요리의 재료가 아니라 나, 너, 우리가 요리의 재료가 된 메뉴를 구성된다면 이 영화와 같을까.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셰프의 재료가 된 사람들
그날따라 저녁 식탁엔 먹을거리가 가득했다. 한 낮,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던 고단함과 피곤함을 식탁 위 올라와있는 맛있는 냄새가 상쇄시킬 정도였다. 고단함은 잘 구워진 목살로, 피곤함은 잘 끓여진 된장찌개가 그 역할을 자처했다. 그래서인지 이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찾기 시작했고, 그 선택은 역시나 영화였다. 수많은 영화 중 내가 고른 영화는 '더 메뉴'였다. 한상 가득 차려진 식탁에 어울리는 영화였다. '더 셰프', '아메리칸 셰프' 등 그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역동감을 기대했다. 영화의 시작 10분 뒤,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인당 1000불이 넘는 코스 요리에 보트를 타고 섬으로 이동하는 그 장면에서, 왜인지 모르게 다시는 육지를 못 밟을 것만 같은 카메라 각도에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상상했던 저녁 식탁 위 맛있는 음식과 어울리는 시각적으로 훌륭한 메뉴들을 내보일 줄 알았던 영화는 다른 느낌으로 저녁 식탁 위를 스며들었다. '호손'으로 불리는 식당에 보트를 탄 사람들이 도착했다. 지정된 좌석에 앉은 그들은 그 순간 이제 셰프가 내어주는 오마카세식 요리의 재료가 되었다.

드디어 시작된 셰프의 끔찍한 코스
셰프는 코스 요리를 내기 시작한다. 아뮤즈 부쉬부터 시작하여 메인, 디저트까지 훌륭한 코스 요리가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코스 요리의 재료가 바로 식당에 도착한 손님들이라는 점이다. 셰프는 훌륭한 요리사로 성공한 삶이었지만 세상의 각박한 평가와 훌륭한 요리는 내더라도 그 요리가 어떤 요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단골손님을 보며 요리에 대한 회한을 느낀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건 색다른 요리였고 그 재료는 식당의 손님들이었다. 손님들이 도착하기 전, 모든 손님의 뒷조사를 마친 그는 그들에게 벌을 주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비리를 저지르는 중역, 끔찍한 영화를 찍은 배우, 요리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비평가까지 각각의 죄를 지은 사람들이었다.
이미 배고픈 손님들에게 요리의 기본인 빵조차 내어주지 않고 꿈보다 해몽 같은 말로 빵에 곁들이는 소스만 요리로 내거나, 토르티야에는 비리를 저지른 재무제표 등 그 들이 저질렀던 죄의 장면을 프린트하여 제공함으로써 손님들로 하여금 불쾌함과 불안함을 조성시킨다.

다음은 셰프의 특식 요리다. 부주방장의 '난장판'이라는 요리를 준비한 셰프는 이제 좀 제대로 된 요리를 주려나 기대했던 손님들의 상상을 단 발의 총성으로 깡그리 부숴버렸다. 이제부터 진짜 요리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식당 안 손님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나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쯤 되니 내 풍성했던 저녁 식탁은 이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회의 테이블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요리는 디저트를 향해가고 있었다. 요리의 끝나는 순간 식당 안 사람들은 전부 죽은 목숨이었다. 이 게임의 목적이 그랬기 때문이다. 손님들 중 한 명이었던 안야 테일러 조이는 셰프의 심부름으로 잠깐 식당을 벗어날 수 있었고, 몰래 셰프의 집에 들어가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무전기를 발견하게 되고 해상구조대에게 살려주기를 요청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식당으로 돌아온 그녀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속으로 짓고 있을 때 구조대원이 도착한다. 그는 손님들에게 괜찮냐고 묻지만 이미 목숨이 위태로운 손님들은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렇게 구조대원이 그냥 지나치려고 할 때 누군가 냅킨에 살려달라는 문구를 적어 전달한다. 구조대원은 총을 꺼내 식당 직원들을 향해 겨누지만 그것조차 셰프가 준비한 특식에 불과했다. 구조대원은 이미 셰프의 편이었고 한 번의 쇼만을 선보이고 떠났다. 안야 테일러 조이를 비롯한 식당 손님들은 이제 더 이상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안야 테일러 조이는 셰프의 집에서 봤던 그의 일대기를 떠올렸다. 성공한 셰프가 아닌 한 때 정말 음식만을 좋아해서 요리를 했던 순수했던 그 시절의 셰프. 그녀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당돌하게도 셰프에게 특식을 요청한다. 디저트까지 끝난 코스 요리를 전부 먹었지만 여전히 배고프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한 마디에 셰프는 "이 년은 뭐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묻는다. 어떤 음식을 원하시냐고.
그녀의 선택은 치즈버거였다. 셰프가 어렸을 적 만들었던 치즈버거를 재연해 주길 바랐고, 셰프는 그 시절로 돌아가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을 내보인다. 맛있게 한 입 베어문 그녀는 여전히 당돌하게도 너무 맛있다는 칭찬과 함께 '테이크 아웃 되나요?'라고 묻는다. 묘수였다. 남은 치즈버거를 테이크 아웃한 그녀는 혼자만 유유히 죽음의 식당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남은 건 피날레였다. 안야 테일러 조이가 떠나간 식당은 이제 공간이 아닌 요리를 담는 그릇으로 변해있었다. 남아있는 손님들에게 마시멜로우를 엮어 만든 옷을 입히고 초콜릿을 녹여 만든 모자를 씌운다. 그리고 식당의 바닥에는 마지막 디저트라고 선전포고 하듯이 플레이팅을 시작한다. 마시멜로와 초콜릿. 이제 필요한 건 맛있게 구워줄 수 있는 불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정말로 디저트의 재료가 된 손님들은 그렇게 셰프의 코스로 쓰임 당하며 생을 마감한다.

잡설
영화가 끝난 후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간단했다. 저녁 식탁을 맛있는 음식들로 풍성하게 차려준 여자친구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차려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감사함과 존경을 표하지 않은 음식에 대한 결말을 이 영화를 통해 시청각 교육까지 마쳤으니, 내 목숨을 위해 내가 내뱉을 말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다. 오늘 하루도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준 누군가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잊지 말자.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브 펀치(Love Punch, 2015), 국민연금 따윈 필요 없다. 천만 달러짜리 다이아몬드 훔치기 대작전 (0) | 2023.02.09 |
---|---|
캅 아웃(Cop Out, 2010), 캅 아웃? 카드 아웃? 잃어버린 야구 카드 찾기 대장정 (0) | 2023.01.22 |
티켓 투 파라다이스(Ticket to Paradise, 2022), 천국행 티켓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 (0) | 2023.01.06 |
매직 캘린더 - 크리스마스를 부탁해(The Holiday Calendar, 2018), 이날만은 남사친도 다시 살펴 보자 (1) | 2022.12.30 |
와이프라이크(WifeLike, 2022), 므흣한 제목, 이제 트렌드는 반려인이다. (0) | 2022.12.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