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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그루지 매치(Grudge Match, 2013), 묵은지보다 맛있는 30년 묵은 복수의 맛

by 기묭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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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매치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날을 위해 30년을 기다려왔다. 상대방에게 주먹 한 번 던지기 위해 기다려온 30년이었다.


30년 묵은 복수의 시작.

그루지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원한, 유감이다. 그럼 그루지 매치는 원한이 있는 경기(?)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체육학 사전에는 그루지 매치를 조금 더 사려 깊게 풀어놓았다.

'서로에게 반감이 있거나, 이전의 패배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개인 또는 팀끼리 대회를 하는 것'

30년 전, 실베스터 스텔론과 로버트 드 니로는 복싱 챔피언 자리를 놓고 싸우는 세기의 라이벌이었다. 현역 당시 그들의 전적은 1승 1패.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실베스터 스텔론이 은퇴를 하게 되고, 그 둘의 승부는 마치 1995년 LG 트윈스가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게 되면 개봉하겠다고 한 소주가 2022년 현재까지 무려 28년간 닫혀 있는 것처럼, 평생 일어나지 않을 일인 양 멈춰있었다.

일이 터졌다. 조연으로 출연한 케빈 하트가 소주 뚜껑을 열었다. 30년간 케케묵었던 낡은 챔피언들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30년이 지난 현재, 그들에게 남은 건 과거의 영광 말고는 없었다. 그렇게 지난 영광을 밥 한 숟가락 굴비 한번 쳐다보는 식으로 지겹도록 우려먹었다. 이제는 진짜 굴비를 맛볼 차례다.


그루지 매치
출처 : 유투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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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스터 스텔론 vs 로버트 드 니로.

실베스터 스텔론과 로버트 드 니로는 각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실베스터 스텔론은 폐차장에서 차를 끌고, 타이어를 밀어붙이며 체력을 단련시켰고, 로버트 드 니로는 줄넘기와 턱걸이로 몸을 만들어나갔다. 그들은 30년 전으로 돌아가 챔피언 자리를 두고 다투는 젊은 사자와 호랑이처럼 매섭게 훈련했다.

시합 당일, 둘은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링'이라고 불리는 아주 모순적인 장소에서 권투 글러브를 부딪힌다. 인생의 반을 서로를 증오하고 무시하던 사람들이 링에서 세월과 함께 주먹을 덤으로 맞으니 아차 싶었는지, 그들에게 승부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닌 게 되어버렸다.

젊은 날의 치기와 오해로 서로를 미워했던 둘은 서로의 마음이 담긴 진심 펀치를 주고받으며 30년 만에 만난 회포를 풀고 있었다. 상대방을 다운시켜야 이기는 경기에서, 넘어진 상대를 부축해주고 일으켜 세우며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낡고 무뎌진 마음을 버리고 새로 태어났다. 서로를 가장 미워했던 둘이 오히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파트너였다. 그래서, LG 트윈스는 실베스터 스텔론과 로버트 드 니로처럼 2년만 더 지나면 소주병 따고 한 모금할 수 있으려나.


잡설

영화 속 실베스터 스텔론의 닉네임은 'Razor', 로버트 드 니로의 닉네임은 'Kid'다. 챔피언을 지낸 후 30년이 지난 지금, 갱년기도 훌쩍 넘었을 것 같은 할아버지들의 닉네임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어설프다. 그럼에도 둘이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열정과 화끈함은 'Razor'와 'Kid'란 닉네임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실베스터 스텔론은 여전히 매서운 성격을 가졌고, 로버트 드 니로는 여전히 개구쟁이 같이 철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예전에 열정을 온데간데 사라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 의의를 둔다고 생각한다. 이 둘의 '그루지 매치'를 보고 나서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30년이 지난 후 링에 오르는 그들은 여전히 30년 전의 'Razor'와 'Ki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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