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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Little Forest: summer&autumn, 2014), 예쁘게 노을 진 새빨간 구름 맛의 영화

by 기묭 202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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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포레스트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하루하루를 바쁘게 사는 요즘, 맛있는 한 끼의 가장 적합한 재료는 느림과 여유다. 이 한 끼에 담긴 맛은 예쁘게 노을 진 새빨간 구름 맛이었다.


항상 만족스러운 여유로움의 맛.

그러니까 우리는 가끔 새로운 기대감은 없지만, 최소한의 만족은 보장하는 장치들을 여러 군데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흔히 말하는 기본빵 말이다.
배고플 때 순대국밥을 찾거나, 데이트할 때 늘 가는 시청의 한 카페를 찾아가는 행위들이 그러하다. '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패를 경험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겐 보장된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꽤나 큰 메리트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돈 룩업' 이후 4번이나 영화를 선택하는데 실패한 나에게 더 이상의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기본빵을 찾았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를 무척이나 재밌게 본 나는 언젠가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를 보겠다고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놓고 있었다. 그리고 입맛이 없을 때 잘 묵은 김치를 꺼내 먹듯이 이 영화를 꺼내 들었다.
역시나 이 영화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조금도 모난 곳이 없는 영화인 탓에 어떤 장면을 캡처할지조차 정하지 못한 채 영화를 끝까지 보고 말았다.


하시모토아이
출처 : 유투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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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리와 하시모토 아이.

각 나라의 주연인 김태리와 하시모토 아이는 영화의 무드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누가 더 낫다고 할 것도 없었다.
영화에는 맛있는 한 끼부터 달달한 디저트까지 다양한 종류의 요리가 등장한다. 두 배우는 마치 요리의 한 종류처럼 느껴질 만큼 영화 속에 잘 스며들었다.
자극적인 영화에 피로감을 느낄 때, 문득 마음 편한 영화인 이 영화가 다시금 떠오를 것만 같다. 마치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게 잘 차려진 가정식 같이.


리틀포레스트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잡설

부쩍 여유가 사라진 하루하루에 여유로움을 크게 한 스푼 떠서 넣는 느낌의 영화다. 혹자는 평균 심박동 80 bpm에 불과한 111분짜리 영화가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항상 긴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잔잔함은 감사할 뿐이다.
시멘트로 둘러 쌓인 아파트 속에서 재택근무를 마치고 갑갑한 마음을 풀러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린 적이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가는 중에 노을이 지며 새빨간 구름이 형성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육교 위에 사람들이 서있었다. 저마다 하루를 마치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와중에 마주친 아름다운 광경에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그 광경을 눈에 담아 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광경을 벗 삼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 그 시간만큼은 느리게 흘러가길 바랐다.
나도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자전거를 이끌고 육교로 올랐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이 영화는 느림과 여유를 재료로 만든 아름답게 노을 진 새빨간 구름의 맛을 표현한 영화다. 111분이라는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나를 달랠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내 입 맛에 너무 잘 맞았다. 이런 맛을 내는 가게가 있다면 지겹도록 찾아가고 싶은 단골손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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