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그램은 가짜지만 내 인생은 진짜다. 진짜 나 자신을 마주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인간을 연기하는 데에는 도가 튼 톰 행크스
홀로그램이란 단어를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다. 한 때 시대를 풍미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바탕 휩쓸고 간 단어였으나 무언가 과대 포장된 알맹이가 들통나 근시대엔 허황된 기술로 취급당했던 안타까운 단어다. 2016년도 어간이 더욱이 그랬다. 대학교 때 홀로그램을 연구하는 교수님의 랩실에도 견학 갔으니.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어찌 되었건 이 영화는 미래의 기술이 메인 디쉬가 아니다. 톰 행크스의 원맨쇼, 홀로그램 시스템을 국왕에게 프레젠테이션 하고 영업하려는 한 영업 사원의 다큐멘터리가 메인 디쉬다. 한 인간을 연기함에 있어서 톰 행크스보다 뛰어난 배우가 있을까 싶다. ‘핀치’, ‘캡틴 필립스’, ‘터미널’, ‘그린 마일’ 등 화려한 눈속임이 없어도 그는 영화 속 그가 연기한 인간에게 한없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영화는 한 중년의 영업 사원이 중동에서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홀로그램 화상 시스템을 팔기 위해 떠나면서 시작한다. 그는 국왕을 직접 만나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도착한 첫날, 빌딩 안이 아닌 빌딩 밖, 천막 속에서 더위에 찌들어 있는 팀원들을 만날 때부터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국왕은 약속한 일자를 계속 지연시켰고 톰 행크스와 팀원은 국왕을 만날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을의 마음가짐으로 기다림의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점차 변해갔다.
더 이상 예전의 나는 없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천막 속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도, 인터넷이 제대로 터지지 않고 식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도 비즈니스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함부로 요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로비에 있는 직원에게 담당자가 있냐고 물을 때마다 없다고 돌아왔던 대답과는 다르게 몰래 들어간 빌딩 안에는 이미 담당자가 있었다. 그곳은 내가 쟁취하기 위해 움직이는 만큼 내게 무언가를 쥐어주는 곳이었다. 이를 깨닫고 나서는 팀원들을 위해 먼저 나서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당한 요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그는 그렇게 조금씩 변해갔다.
시간이 지나 국왕을 만나게 되었고 빵빵한 인터넷으로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멋지게 마쳤지만, 경쟁 업체의 진입으로 끝내 사업을 수주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변화를 토대로 그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그에게 중동은 사업의 기회가 아니라 자신이 변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잡설
톰 행크스는 ‘인간’ 그 자체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배우 같다. 아마 내가 나 자산을 알고 있는 것보다 톰 행크스가 나란 존재를 연기할 때 오히려 더욱 나 같을 수도 있다. ‘넌 나고 난 너야’라는 지코의 노랫말은 어쩌면 톰 행크스의 연기를 보고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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