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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크루엘라(Cruella, 2021), 흰색과 검은색, 오이와 당근

by 기묭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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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 공식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단 한 가지의 모자람도 없이 창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분명 무언가는 결핍되어 있다. 나는 지금껏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크루엘라란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유 있는 소란스러움

재밌다. 무척이나.
단언컨대, 근 시일 내에 개봉했던 영화 중에 가장 재밌는 영화일 것이다. 또한 세기를 아울러도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고 내릴만한 영화임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달마티안 어쩌고 저쩌고 말이 많아,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이 놈의 반골 기질은 다른 사람 입에 수 없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그 들의 입에서 찬양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작동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적엔 "왕의 남자" 도 극장 가서 보지 않았다. 그 유명한 천만 영화였음에도.

착오였다. 그리고 무의미한 반골 기질이었다.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구전 동화'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이야기가 없었다면 내 유년 시절은 크루엘라의 오른쪽 머리색처럼 다채로운 상상의 색을 빨아들이는 검은색과 같았을 것이다.


 

크루엘라가 검은색, 하얀색으로 머리를 반반 염색하고 당당하게 차에서 내리는 장면
출처 : 유투브 영화

 


 

흰색과 검은색, 어떤 게 진짜일까

크루엘라는 머리색과 같은 삶을 살았다. 오른쪽 머리는 검은색, 왼쪽 머리는 흰색. 어둡고 밝으며 다채롭고 일반적이지 않다. 크루엘라는 붉은 갈색의 일반적인 머리색인 가발을 쓰고 살아갔지만, 역시나 쉽지 않다. 그녀 안에 있는 창의성은 머리색을 바꾼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처럼 일반적인 수준의 창의성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가발을 집어던지고 그녀의 머리색처럼 다양한 색의 창의성을 패션이라는 매개를 통해 나타낸다.

눈이 즐거운 패션의 향연과 크루엘라의 심리 변화, 어머니의 죽음, 남작 부인과의 대립, 마치 '할리퀸'이 생각나는 빌런화까지. 무엇하나 놓칠 게 없는 메인 디쉬만 가득한 오뜨 꾸뛰르 뷔페에 오신 것을 환영하는 바이다.

 


 

잡설

처음엔 그랬다. 횟집에 가면 반찬으로 나오는 오이와 당근은 당연시 멀리하고, 오이 냉채 국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굉장히 고착화되어 있는 내 입 맛 탓에 편식이란 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세상엔 무수히 많은 영화가 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하는 영화들은 비슷했다. 특히나, 디즈니 영화를 오이와 당근처럼 대했던 나는, 새롭게 나오는 모든 디즈니 영화를 리필한 오이와 당근처럼 취급했다.

어느 날, 을지로 3가에서 약속이 있어 중식당에서 1차로 신나게 술을 마신 뒤, 2차로 작은 횟집으로 갔다. 이곳도 어김없이 오이와 당근을 내왔다. 그날따라 1차에서 술을 많이 마셔서 인지 입이 심심했고, 내 손은 오이와 당근으로 향했다.

아뿔싸.
그 간 남들은 충분히 즐기고 즐겼을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다. 디즈니 영화는 오이와 당근이었다. 머뭇거리며 선택했던 '크루엘라'는 근래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 내게 더욱 큰 즐거움을 주었다. 이젠 오이 냉채 국까지 도전해 볼 용기가 생기게 해 준 이 영화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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